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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오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죠? 이모! 정말 힘들었,,, 에이 소주 한병 더 줘요"
"그만 마셔. 늘 국밥 한그릇만 먹고 가던 녀석이.. 벌써 3병을 마셨어"
"이모! 이모! 정말 왜 그러죠? 왜 다 변하기만 하죠? 내 말좀 들어볼래요?"
"딸꾹", "끄억"
소주에 흐트러진 말들과 생리학적 반응음이 주거니 받거니 화음을 이루는 묘한 풍경이었다.
이모는 이모라고 부르는 한 남정네의 탁자를 뺀 나머지 탁자를 묵묵히 행주로 훔치고 있었다.
"어릴적 먹던 떡볶기 아시죠? 이모. 어릴 적 먹었던 떡볶기는 대파도 잔뜩 들어 있어서 정말 맛이었다구요"
"응. 그랬지"
"근데 왜 요즘 떡볶기들은 멀건 국물하고 떡 밖에 없어요? 정말 이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끄억, 떡볶기 한 그릇에도 내가 대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란 말이죠"
"조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에 조카랑 팥빙수를 먹으러 갔거든요? 근데 말이에요. 어릴적 먹던 그런 팥빙수가 아닌거에요. 온갖 과일이며 젤리이며 아이스크림이며 달기만 하고, 그 수수하고 수줍은 팥빙수 맛이 안나는 거에요"
"요새 사람들 입맛에 맞추느라 그러겠지." 이모는 탁자를 훔치면서도 사내의 말을 받아주는 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게 뭔지 아세요? 이모 몇일전에 볼 일이 있어서 내가 나온 초등학교를 지나가게 되었거든요? 근데 근데 딸꾹, 근데 말이죠 이건 정말
화가 치밀어,, 끄억 내가 다닐때만해도 킹콩 다리통만한 느티나무가 한그루 떠억하니 운동장 한쪽에 있었거든요. 우리 학교의 상징과도 같아서
학교 마치고 애들이랑 땡볕에 놀다가 지질때쯤 그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어찌나 시원하고 기분좋았는지. 근데 근데요. 이 나무가 없는 거에요.
담장을 허물고 잔디를 깔면서 없애버린거에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새로 증축하면서, 학교 뒤의 나무들을 죄다 없애버렸더구나. 아쉬운데 어쩌겠어. 세상이 변한다잖니"
"에이씨, 난 말이에요. 변하는 게 정말 싫어요. 왜 좋았던 것들은 죄다 그리 사라져 버리는지.. 이모 술한병 주세요 네?"
"많이 마셨어 그만 마셔" 이모는 젖은 물기의 그릇들을 마른 행주로 닦았다.
"내가 오늘 더 힘든게 뭔지 아세요 딸꾹. 이모 정말 뭔지 아세요? 내가 말이에요 병신같이 말이에요. 지숙이를 잊지 못하는거에요. 세상 모든게 변하는 데, 왜 난 지숙이 얘를 잊지 못하냐구요 병신같이 말이에요. 변하는게 싫은데 정말 변하고 싶은게 변하지 않아 정말 싫어 죽겠다구요. 정말 힘들다구요"
"이~~~모!! 술 한병 더 줘요"
사내는 술 한병 더 달라는 말을 수차례 해댔다. 짧은 새에 점차 그 소리는 누그러져 갔고, 그의 고개도 떨구어져 갔다.
이모는 사내를 측은히 바라보며 30분 정도 자게끔 놔두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모의 배려와는 상관없이,, 사내는 졸면서도 '이모 이모 지숙이가 말이에요 지숙이가,, 술한병 꺼억' 종잡을 수 있는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이때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사내가 한달에 한번씩 가는 샹젤리제 미용실 아줌마가 일을 마쳤는지 들어왔다.
"아주머니,, 술국하나랑 소주 한병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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