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중개업체들이 벌이는 묻지마식 '속성결혼'의 폐해가 심각한 가운데 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중개업체들이 결혼 성사를 목적으로 배우자에 대한 허위 정보를 건네는 사례가 빈번한 가운데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피해자가 신고한 업체에 대해서만 사후적 조치를 취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여성가족부와 한국결혼중개업협회 등에 따르면 국제결혼중개업체가 주선하는 속성결혼은 통상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1일차 출국 후 2일차 상견례, 3~4일차 신혼여행, 5일차 국내로 들어오는 게 보통이다. 불과 하루만에 결혼 여부를 결정하고 곧바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탓에 상대방의 필수 신상 정보는 중개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김선빈 한국결혼중개업협회장은 "속성결혼의 폐해가 알려지면서 과거에 비해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을 경계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불량 중개업체에서 제공하는 부정확한 정보에 따른 피해는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건실한 한국남자라더니…" 이주여성 목숨 앗아가는 '속성 결혼')

◇하루만에 결혼, 곧바로 신혼여행…"결혼상대방 정보 중개업체에 전적으로 의존"= 불량 중개업체 피해가 줄지 않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가격'이다. 김 회장은 "인터넷만으로 고객을 모집하는 일부 업체들은 중개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신청자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성혼에만 몰두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의 중개업체는 420여곳으로, 비용은 동남아의 경우 건당 1300만~1500만원, 동북아는 1700만~2000만원 정도지만 일부 온라인 업체들은 수백만원 가까이 저렴하다.

특히 묻지마식 속성결혼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됐음에도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피해 신고가 된 업체들 중심으로만 사후적 징계 처분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결혼중개업의관리에관한법률 제12조에 따르면 결혼 중개업자는 결혼중개 이용자에게 거짓된 정보를 제공해선 안된다. 또 같은법 제10조의 2항에는 국제결혼중개업자가 계약한 이용자와 결혼 상대 양쪽으로부터 신상정보를 받아 국가 공증인의 인증을 거친 후 서면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공 항목은 △혼인경력 △건강상태(후천성면역결핍증, 성병 및 정신질환 여부 포함) △직업 △성폭력·가정폭력·아동학대·성매매 등 범죄 경력 △상대국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사항 등이다. 이를 위반하는 업체는 등록 취소, 영업소 폐쇄 또는 1년 이내 영업 정지의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가부는 '샘플식' 관리·감독을 하고 구청 등 기초단체가 관내 업체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는 방식이지만, 자본금이나 실적 관련 서류가 충분히 구비돼 있는지 등 서류 미비 정도를 살펴보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허위 사실로 피해를 본 사람이 경찰이나 다누리 콜센터에 신고하면, 위반사항 적발시 구청 등 기초단체에서 행정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속성결혼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핵심인 '정확한 정보 제공'에 대해선 선제적 단속이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더욱이 국내 환경에 익숙치 않아 신고하지 못하는 결혼이주여성 등은 이미 존재하는 법의 보호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결혼이주여성 전 남편에 살해당한 '오금교 사건'…여가부 "중개업체 조사 안 해"= 관련법이 시행된 2008년 이전의 결혼이주여성들은 이 같은 법적 보호마저 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일 서울 오금교 인근에서 조모씨(51)가 베트남 출신 전 부인(30)과 딸(6)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오금교 다문화가족 살해사건 역시 속성결혼 의혹이 제기되지만, 당국은 관련법 시행 전이라 이들을 중개한 업체는 조사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전 부인이 조씨와 결혼한 시기는 2008년이다.
(관련기사☞ [단독]서울 오금교서 다문화가족 숨진채 발견, [단독]오금교서 다문화가족 숨진채 발견…"부인 임신中")

여가부 관계자는 "이 여성은 결혼중개업의관리에관한법이 시행된 2008년이나 10조 2항이 개정된 2010년 전 결혼해, 중개한 업체는 여가부 관리 감독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시) 당사자들이 배우자에 대해 충분히 확인해야 한다"며 부정확한 정보에 따른 피해를 '개인의 몫'으로 평가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중개업체를 믿고 자국을 떠나 해외에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중요한 결심을 하는 만큼, 결혼 상대방에 대한 허위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들을 선제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신애 광주북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이미 결혼해서 한국에 왔는데 뒤늦게 업체를 신고해 처벌한들 무슨 소용인가"라고 꼬집었다. 또 "이주 여성들이 일부 강압적인 남편들로 인해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점을 고려하면, 당국이 불법 중개업소에 대한 관리감독과 이주여성들을 지역사회 네트워크에 노출시키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