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자유)] 후세 다쓰지.ARABO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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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0 15:48 조회수 : 216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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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다쓰지(1880~1953)
일본의 인권변호사 겸 사회운동가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건국훈장 수여자 중 유일한 일본인이다.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 출신으로 메이지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검사로 부임했다.
검사로 일하는 동안 생활고로 아들과 동반자살 하려다 혼자 살아남은 여인을 살인미수로 기소하는 법률에 회의를 느끼고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다.
주요 활동
-1911년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통해 일본의 조선병합이 침략이라 규정하고 독립운동을 지지했다가 경찰 조사를 받는다
-1919년 2.8 독립선언의 주체인물들을 변호해 내란죄 혐의에 대한 무죄를 주장했다. 그밖에도 도쿄 궁성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았다.
-관동대지진때 일어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조작된 유언비어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조선일보에 사죄문서를 보냈다.
-박열, 후미코 부부를 변호했고 옥중 결혼 수속도 도왔다. 후미코가 옥사하자 유골을 수습해 박열의 고향인 문경에 매장했다. 영화 박열에서도 나온다.
-현재까지 활동중인 일본의 진보 변호사 단체 자유법조단의 창립멤버.
-1928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1932년 일본 정부의 공산당 탄압을 법정에서 비판하다가 법정모독으로 변호사 자격 박탈. 이후에도 2번 회복과 박탈을 반복했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도 2번 지낸다.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변호사 자격을 회복한다. 주로 재일 한국인이나 노동운동에 관련된 사건들을 맡았다.
-1946년 한국을 위한 조선 건국 헌법 초안을 작성.
사후 한국 독립훈장 수여까지 50년이나 걸려 2004년에서야 인정됐다.
그 업적은 인정하지만 일본인이라는 점과 사회주의 운동을 한 경력때문에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본인이 이미 고인이라 외손자가 대신 수상했다.
고향에 생가와 기념비가 있고 묘는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죠자이지라는 절에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한국인 스님이 있어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천황제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이기는 하나 인위적인 폐지보다 황실의 대가 자연스럽게 끊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무다구치 렌야가 어둠의 독립유공자라면 이분은 빛의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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