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이어지는 추모 발길] "아빠의 '내딸 싸랑해 만히' 문자가 마지막이 될 줄은…"성남=이석호 기자


故 한주호 준위 대학생 딸 슬기씨

1일 오전 고(故) 한주호(53) 준위의 딸 슬기(19·대구대 영어교육2)씨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열어 쓰다듬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슬기, 한의원에 전화 안 했으면 아버지가 하마. 그리고 기숙사 주소 문자(메시지로) 보내거라. 내딸 싸랑해. 만히.'

지난달 16일 오전 10시 46분, 한 준위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슬기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였다. 아빠는 '사랑해' 대신 '싸랑해', '많이'가 아니라 '만히'라고 쓸 줄 아는 신세대 군인이었다.

"'싸랑해 만히'라고 쓴 아빠 글이 너무 귀여워서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자랑했어요. 힘들 때마다 이 문자를 보면서 힘내려고 저장해뒀는데…." 얼마 전 휴대전화를 바꾼 슬기씨가 유일하게 보관하고 있는 메시지였다.


▲ 이석호 기자 경기도 성남시 국군통합병원 빈소에서 만난 슬기씨는 "솔직히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아빠 한 준위는 술 한잔 걸치고 집에 올 때면 늘 딸부터 찾아 "사랑해"를 연발했다. 오빠 한상기(25) 중위가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한 준위는 곁에 있는 슬기씨에게 많은 사랑을 줬다고 한다.

슬기씨와 어머니 김말순(56)씨는 지난달 27일 한 준위가 천안함 후배들을 구하러 간다고 하자 뜯어말렸다. 작년 3월 소말리아로 파병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은 "평생 훈련하며 살았는데 전쟁터에 가서 한번 (훈련한 것을) 써보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보내드렸고, 한 준위는 그때마다 무사히 귀환했다. 이번 구조 작전도 처음엔 괜찮았다.

"3월 29일 밤에 '뉴스 봤니? 뱃머리(천안함 함수) 찾았어. 그거 아버지가 찾은 거야." 딸 슬기씨는 아빠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아빠 최고." 하지만 슬기씨는 "그럼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라고 애원했다. 아빠는 그러나 다음날 싸늘한 몸으로 돌아왔다. 딸은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패였다"고 했다. 첫 실패가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