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는 시대의 아픔을 다루고 있지만 신파적으로 특정 감정을 관객들에게 요구하지 않아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담담하게 그려냈죠.”

영화 ‘택시운전사’는 5·18을 취재했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에 데려다 줬던 택시기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주연배우 송강호의 말처럼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의 넘침이 없다.

광주 시민이 ‘겪은’ 이야기가 아닌 외지인의 눈으로 광주를 ‘목격’한 이야기를 중심에 뒀기에 담백한 전달이 가능했다.

현재까지 관객들의 반응은 ‘역시 송강호!’라는 것. 개봉 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에서 온 택시가 금남로를 지날 때 광주시민들이 주먹밥을 나눠주고 웃으며 반겨주는 장면이 있어요.

찍을 때는 몰랐는데 영화로 보니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군요. 이렇게 밝고 순수하고 평화롭던 사람들인데…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만섭에게 주먹밥을 건넸던 여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들에게 구타당하고 끌려간다.

당시 광주 시민을 제외한 대부분 국민들이 그랬듯 만섭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밀린 월세 10만원을 갚기 위해 독일 기자 피터를 광주에 데려다줬을 뿐이다.

그날 밤 피터를 따라 시위 현장에 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만섭은 새벽에 홀로 도망친다.

“만섭은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쳤지만 피터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잡지 않았어요. 돈까지 줬죠.

만섭이 순천까지 가는 마음도 편치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순천에서 광주에 대한 유언비어와 왜곡 보도를 접하고 다시 차를 돌려 광주로 갑니다.

딸에게 전화해 조금 늦겠다며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다’고 말하는 장면은 만섭의 투철한 직업 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모습인 거죠.”

배우 송강호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5·18을 목격하게 된 서울 택시기사 만섭을 연기했다. 그는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지켜가면서 역사가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기본적 ‘인간의 도리’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송강호는 말한다.

“만섭은 특별히 의식이 있던 사람이 아니에요.

아내와 사별해 어린 딸을 홀로 키우고, 데모해서 길을 막는 대학생들을 못마땅해하는 평범한 시민이었어요.

하지만 도망갈 기회를 버리고 다시 광주에 돌아간 건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함이죠.

그 어마어마한 비극도 다 그 도리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이념과 대단한 운동가들이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지키면서 시대와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광주 시민들이 그랬고, 가깝게는 지난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그랬죠.”

만섭이 다시 광주로 향하는 장면은 관객들이 꼽는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다.

그는 광주를 잊기 위해 애써 신나게 ‘제3한강교’를 불러보지만 노래를 이어가지 못하고 울먹이다 핸들을 꺾는다.

관객들은 만섭과 함께 공포를 느끼고, 갈등하고, 또 마음을 다잡는다.

송강호는 만섭의 감정과 행동 변화를 별 대사 없이 관객들에게 잘 설득시킨다.

“‘이 밤이 새면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라는 가사가 광주의 새벽, 광주 시민들의 바람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죠. 실제로 촬영할 때는 짧은 구간에서 운전하고, 노래하고, 연기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송강호는 이 영화로 지난 2일(현지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폐막한 제21회 판타지아영화제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이야기를 다룬 ‘효자동 이발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다룬 ‘변호인’ 등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유독 엄혹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이 섞여 있다.

“매번 사회적 의미를 담은 영화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그런 작품들을 보면 마음이 가긴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정권 문화계 ‘블랙리스트’ 배우로 자주 언급됐다.

“상대적으로 적은 작품이 들어오긴 했지만 작품이 안 들어왔던 건 아닙니다.

제가 다작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늘 6개월∼1년 정도 쉬어요. 그때도 1년 쉬었는데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실은 제가 알 수 없습니다만….”

송강호가 영화 ‘넘버3’의 말더듬이 조폭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게 20년 전이다.

그간 북한군, 형사, 신부, 왕 등 여러가지 역을 거쳐 왔지만 관객들은 ‘소시민’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그를 기억한다.

친근함과 신뢰감은 배우 송강호를 설명하는 평범하면서도 가장 어울리는 단어다.

2일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이틀 만에 누적관객수 100만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기대를 모았던 대작 ‘군함도’가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올해 첫 ‘천만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조심스레 ‘택시운전사’로 옮겨가고 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을 주연배우 송강호는 기꺼이 견딘다. 국가 대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답다.

“부담이요? 당연히 가져야죠. 영화배우는 당연히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내 영화관에 오시는 관객분들한테 낭비를 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재미있다’ 생각하시면 좋겠고, 이왕이면 마음의 양식까지 얻어가실 수 있는 값어치 있는 두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022&aid=0003197656

인터뷰 내용이 너무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