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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님
역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실 中_
김구 선생님은 젊은 시절 부정부패로 이미 장원 급제자가 정해진 부패한 길보다 사주와 관상을 공부하여 일을 해보려 하였다.
몇달을 공부하던 중 본인의 관상을 본 후 잘난 점을 찾지 못하여, 스스로 뭔가 이루려는 꿈을 접게 되었다.
자신에게 잘난점이 없다는것을 알고 타인을 위한 삶을 택한 김구 선생님은 그 마음가짐에 시작으로 독립운동의 출발이 된것이다.
영화'관상'에서 나온 '심상'이란 표현은 바로 백범일지에서 나온 말이다.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없는 천하고 흉한 관상을 가진 백범 김구 선생은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다.
백범 선생님처럼 관상이란 마음먹기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관상이 아니라 심상(心相)이 제일이다.
다른 독립군들의 호칭을 보면 의사,열사 라는 표현등이 보이는데 유독 백범김구 선생님은 선생이란 호칭이 붙는다.
윤봉길의사 같이 무기를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하신분들을 의사라 한다. 의사의 뜻은 무력으로 항거하다 의롭게 죽은 사람이란 뜻이다.
열사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을 칭한다. 맨몸으로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내는 사람이란 뜻이다.
선생은 김구 선생님 같은 분을 칭하는데 민족의 지도자라는 뜻이다.
김구 선생님은 일제 감정기때 많은 옥살이를 하게 되셨으며, 투옥중일때마다 자신의 밥을 다른 죄수들에게 나눠주었다 한다.
배고픔에 허덕이던 죄수들은 그저 받아먹기만 하였는데 그것이 반복되자 궁금하고 미안해진 다른 죄수들이 김구 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었다.
나쁜죄로 수감되었던 죄수들이 그분의 행동과 말에 크게 감동하여 옥살이가 끝나면 독립군에 참여한 수가 많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독립에 의지가 있고 행동을 원하는 사람은 김구 선생님에게 가르침과 지원을 받았으며,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했던 사람들도 김구 선생님을 통하였기에 그 당시 역할을 엄청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모두가 그분을 민족의 지도자가 칭할수 있다.
김구 선생님은 문화를 크게 장려하였다.
그 이유가 우리나라는 지하자원이 풍부한것도 아니요,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요, 관광산업으로 크게 성공할 나라가 아니었기에 오로지 문화산업의 장려가 이 나라를 크게 만들것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 문화중에서도 만화를 특히 좋아하셨는데 한국인의 상상력과 손재주를 높이 보신 때문이다.
그 당시 만화는 정말 열악할 정도로 미약하였지만 김구선생님의 지원으로 어느 정도 기틀을 잡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명맥이 거의 끊긴 이유가 김구 선생님이 암살되신 이 후 그분의 모든것을 싫어하던 무리들로 인해 만화마저 불온도서로 낙인찍혔다.
만화가는 투옥되고 그 당시 만화책들을 기록으로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모두 불타버렸다.
만약 김구 선생님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고 문화산업이 장려되었다면 분명 지금 대한민국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만화는 영화의 스토리 보드와 같은 역할이기에 지금의 한국 영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출처 _ http://blog.naver.com/yes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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