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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펌] 현직 의사입니다.
상세 내용 작성일 : 17-09-13 02:41 조회수 : 141 추천수 : 0

본문

현직 의사입니다. 나이는 올해 34 되었구요 미혼입니다.

지난 주말 응급실 아르바이트를 갔습니다. 저는 아직 레지던트고요.

올해 3년차 올라가고 내년이면 전문의가 될수도 있습니다. 떨어지면 한 해 더 하구요.

전공은 가정의학과 입니다. 앞으로 내과의원이나 동네 의원개업하고 싶어요.

저는 알바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나라에서 정한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다른 병원도 다 금지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하다가 걸리면 지금까지 수련기간이랑 상관없이 쫓겨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알바를 하는게 두려워요. 저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에서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모자란것 없이 자랐지만, 학비를 대주시는 것은

힘들었어요. 제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지만,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유급 당했습니다. 그것도 두번이나. 의대 8년 다녔습니다. 딱히 동아리 생활을 한것도 아니고

다른 친구들처럼 술퍼마시고 다닌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공부를 따라가는게 너무 버거웠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때는 이명박대통령이 만든 학자금 대출이 있던때도 아니었고, 부모님이

무리하시면 대줄 수 있는 정도였어요. 98년 기준으로 한학기에 350만원 이었습니다.

2년 동안은 부모님이 무리해서 대주셨는데, 유급당하고 나니 더이상 할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서울에 과외자리 좋은데 구했다고. 이제 등록금이랑

생활비는 제가 다 대겠다고. 정말 기뻐 하셨어요. 처음으로 효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사실은 공부하는 틈틈이 강남 아파트 단지에 과외 전단지도 많이 붙이고 편의점 알바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외는 들어오지 않더군요. 문의전화는 많이 왔는데, 사모님들이 하는 얘기는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아, 부산에 있는 xx고등학교 나왔습니다."

"그래요? 우리애가 할지 안할지 확실하지 않아서, 다음에 다시 전화 드릴께요."

거의 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결국 과외는 한번도 못해봤어요. 저는 나름 서울에 있는

유명한 의대를 나왔고, 고등학교때는 날고 기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xx의대생이라고 하니까 한도 40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주더라구요. 보증, 담보, 아무것도 없이요.

그래서 그 통장으로 나머지 학비를 대고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과 더해서 생활비를 했습니다.

졸업하고 나니 빚이 3500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했습니다.

인턴때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같은 인턴이었는데,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녀도 저를 정말 사랑했구요. 하지만 그집은 강남구 도곡동, 소위말해 잘사는 집안이었습니다.

부산에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인지 모를 저와는 다르게 뼈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2년 넘게 사귀었는데 어느날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오빠, 난 오빠를 정말 사랑하는데 결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혹여나, 이말 때문에 제 옛 여자친구를 비난하는 분이 있을 수 도 있는데,

그녀는 그런것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제발 제 옛 사랑을 비난하지는 마십시오.

그녀는 단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녀와는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이제는 저희집에서 반대하는 여자.

현재 제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는 이만 하겠습니다. 프롤로그가 길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어쨌든 저에겐 3000만원이란 빚이 있습니다. 인턴생활 하면서 500만원 갚았어요.

저에게 빛이 남은 상태에서, 여자친구에게 결혼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에, 부모님 손 빌려서 결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빚이 있으니 집에서 좀 보태 주십시오, 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빚을 갚기위해 몰래 알바를 했습니다. 평일에는 근무때문에 못하고

주말에 24시간씩 응급실 알바를 뛰었습니다. 24시간 응급실을 봐주면 35만원을 줍니다.

- 정말 고마운 것은, 지금 여자친구가 오빠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주말에 같이 놀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는게 너무 고맙습니다. 오빠가 이렇게 일하면서 힘든데 자기는 친구들과 같이 놀면

너무 미안하다고, 본인도 알바를 뛰고 있습니다. 그것때문에 화도 많이 냈는데

고집이 정말 셉니다. 사실은 이런면 때문에 제가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 이렇게 벌어서 빚을 거의 다 갚았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남았어요.

이것만 없어지면 부모님이 그렇게 반대하는 그 사람과의 결혼도 제가 얼마든지

떳떳하게 '제가 먹여살리면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겠다고' 밀고 나갈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평소와 다름없이 응급실 알바를 뛰고 있는데 어느 주취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취자는 술먹고 많이 취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취한 사람들은 응급실에 잘 오지 않습니다.

취해도 큰 일 없이 집에 가든지, 경찰서에 가서 자든지, 둘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119 구급대원들 고생 많이 합니다. 술취한 사람들에게 폭행도 당하고 멱살도 잡히고.

그런데 도저히 더이상 컨트롤 할 수 없을 때 데리고 오는 곳이 응급실입니다.

응급실 아르바이트 3년남짓 하면서 별의 별 술취한 사람은 다 봤습니다.

우는사람, 형님 형님 하면서 계속 따라다니는 사람, 무조건 화만 내는 사람.

맞기도 많이 맞았습니다. 응급처치를 하려고 하는데, 자기몸에 손대지 말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출혈이 그렇게 심하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 둡니다. 가서 잘 해주려고

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주먹이니까요. 그정도로 취한 사람들은 가만 내버려 두면 금방

곯아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때 쯤 가서 응급처치를 해줘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술취해서 서로 싸우고 동맥이 끊겨서 온 사람들입니다. 극도로 흥분해 있을 뿐더러

당장 처치 하거나 응급수술을 취하지 않으면 죽을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응급실 온 사방에 본인의 피를 뿌리면서도 다가오는 사람은 모두 공격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화같이 뒤에서 다가가서 손수건으로 입막으면 뻗는 그런 약이 있었으면 하는 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저 알바 하면서 많이 맞았고, 부모님 욕까지 포함해서 왠만한 욕은 다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말 이런저런 이유로 기분이 정말 안좋을 때가 있었습니다.

만취한 환자가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면서 간호사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저와 친한 간호사였는데, 대응하면 안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그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모른채 고개를 돌렸습니다.

인간으로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찰나에, 그 환자가 그럽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책임자 불러와."

일순간 응급실 내 모든 간호사의 눈이 저에게 쏠립니다. 그 응급실에 의사라고는

저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용기를 내서 다가갔습니다. 사실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아서

울고싶은 마음이지만. '제가 책임자인데 무슨 일이시죠?' 온힘을 다해 태연한 척 했습니다.

그 환자분이 이런저런 얘기를 다 했는데,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누가 나를 병원에 데려왔어? 이까짓 피나는걸로 내가 죽을것 같아? 당장 퇴원시켜.'

퇴원시키면 좋습니다. 더이상 더러운 꼴 안봐도 되니까요. 하지만 만일에 하나

그환자가 죽으면,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 환자가 아무리 그릇된 판단을 하더라도요.

그래서 어떻게든 술취한 사람을 상대로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니니까요. 그게 정해진 수순입니다. 그런데 계속 그 간호사를 때렸습니다.

다시 또 눈이 마주치고 울고 있는 눈을 마주했는데 더이상 참지 못해서

둘을 갈라 놓았습니다. '놓고 둘이 얘기 하시라고.'

그리고 그 환자가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때까지 구경하고 있던 보호자 (같이 술마시고 온 보호자 입니다.)가

달려들더니 제 멱살을 잡았습니다. '너 이새끼 뭐하는짓이야.'

'형님이 다쳐서 병원 데려왔더니 의사가 환자를 때려?'

'너 이새끼 니가 의사야?'

'x나 x발 개x로같은새끼가 가운 입었다고 환자가 우스워 보이냐?'

3년남짓 들어온 욕이 한번에 다 나오더군요. 이때쯤 병원 경비가 왔지만

경비라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건 아닙니다. 경비도 알바생이니까요.

괜히 끼어 들어봤자 좋은 꼴 못본다는건 다 알고 있거든요.

한참을 멱살 잡힌채로 욕을 먹다가,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보호자가 그러더군요. 뭐? 너 이새끼 뭐라고 했어. 똑똑하게 말해봐.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죄송하다고 얘기를 하면서.

제가 철들고 그렇게 많이 울어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무상으로 치료받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바를 그만뒀습니다.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는데

더이상 다른 간호사들과 같이 일하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술을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펌/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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