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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이 “절반은 동화 속 나라, 절반은 바가지가 성행하는 관광지”로 묘사한 베네치아.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매력적인 낭만의 도시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아름다움 속에 크고 작은 재난이 끊이지 않는 열정적인 사람들의 땅, 이탈리아. 하지만 이 나라에서도 베네치아만큼 앞날을 종잡을 수 없는 거대한 위기 상황 속에서 이처럼 아름다움을 발하는 곳도 없다. 육지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그 중간에서 반짝이는 이 도시는 아드리아 해 북단에 위치한 석호(潟湖, 라군)에 신기루처럼 떠 있다. 수세기 동안 베네치아는 ‘아쿠아 알타(‘높은 조류’라는 뜻으로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 등 복합적인 영향에 의해 도시가 주기적으로 물에 잠기는 현상)’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왔다. 하지만 ‘아쿠아 알타’는 베네치아가 당면한 문제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다.
마시모 카차리 베네치아 시장에게 물어보라. 철학 교수 출신으로 정치 9단인 그에게 ‘아쿠아 알타’와 침수하는 베네치아에 대해 물으면 그는 “장화를 사라”고 말한다. 장화를 신으면 된다는 것이다.
장화가 물난리에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홍수’에는 무용지물이다. 베네치아로 밀려오는 관광객의 홍수 말이다. 2007년 베네치아 주민 수는 6만 명이었던 데 반해, 관광객 수는 무려 2100만 명이나 되었다.
해마다 베네치아 주민 1인당 수백 명의 관광객이 이 아름다운 도시의 매력을 맛보기 위해 몰려든다. 대다수의 관광객들이 사진 속 산마르코 선착장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쿠아 알타(높은 조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관광객의 ‘홍수’가 최고 ‘수위’를 기록하는 카니발 기간에 군중이 산마르코 소광장 주변에 운집해 있다. 베네치아에는 이곳 외에도 둘러볼 만한 아름다운 곳이 많다. “지도는 던져버리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녀 보세요.” 마시모 카차리 시장은 조언한다.
치렁치렁한 레이스와 관능적인 실크로 장식된 가상의 세계가 ‘카페 플로리안’의 창 안에서 연출된다. 카니발 기간 중 열리는 호화로운 연극에서는 부유한 관광객들도 화려한 엑스트라가 된다. 연극에 참석하는 한 커플이 쓰는 비용은 샴페인과 캐비어를 빼고도 하루에 2000달러나 된다. 의상은 훨씬 비쌀 수 있다. 베네치아 의상실에서 가운을 맞추면 한 벌에 3000달러가 넘는데, 축제 기간 중에 매일 밤마다 다른 의상으로 갈아 입는 부유층도 일부 있다.
“베네치아에서는 자신을 잃는 것보다 더 쉬운 건 없다”고 프랑스 시인이자 예술비평가인 장-루이 보도예는 썼다. 특히 유럽 전역에서 여장 남자들이 의상, 상상력, 연기 분야의 상을 두고 경쟁하기 위해 산마르코 광장에 모이는 카니발 밤에는 이 말이 더욱 와닿는다. 역사가 오래된 여장 연극은 사순절 이전 의식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경연 참석자들은 역사적 의상보다 다른 종류의 의복을 변형시켜 입는다.
산마르코 광장 인근 상점들에서 의상을 빌리는 대신 사진처럼 환상적인 디자인의 의상을 직접 만들어 입는 카니발 참석자들도 있다.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을 책임지는 ‘짐말’은 바포레토(수상버스)로, 사진 속 조타실 창에 비친 대운하를 누비고 다닌다. 기품 있는 ‘서러브레드 종’인 곤돌라(현재 425개가 남아 있음)는 관광객들에게 낭만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젊은이들이 ‘비스트로(작은 레스토랑)’에 모여 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져 폐해가 발생하면서 많은 주민이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도시를 되찾을 시간은 남아 있어요. 우리 세대가 마지막 기회죠.” 주민 에마누엘레 달 카를로는 주장한다.
베네치아에 삶은 존재한다. 2007년에는 440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러나 인구의 고령화, 출산율 감소, 더 저렴한 집을 찾아 본토로 떠나는(물론, 바지선으로) 가정들로 베네치아의 주민 수는 지난 50년 동안 15만 명에서 6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곤돌라 한 척이 베네치아 석호(라군)를 가르며 나아간다. 도시 베네치아를 구성하는 118개의 섬 사이를 흐르거나 어떤 때는 섬 위까지 넘치는 이 바닷물은 도로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도로를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베네치아에 있는 아름다운 운하들의 모습을 유지하려면 끊임없는 보수가 필요하다. 시 당국은 준설, 정화, 운하 보도 높이기 등의 작업을 통해 건물 그림자 외에는 물 속에 잠기는 게 없도록 애쓰고 있다.
베네치아에는 이삿짐 트럭이 없다. 베네치아를 떠나기로 작정한 주민들의 이사 수단은 바지선이다.
부동산 중개인 필리포 가자의 딸들이 4층짜리 팔라초의 고상하게 꾸민 침실에서 놀고 있다. 가자 부부는 자신의 팔라초에서 가장 호화로운 이 ‘피아노 노빌레’ 층을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임대한다. 팔라초에 거주하는 베네치아 가구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살려면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베네치아 카지노에 있는 이 노부부 같은 주민들은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른다.
화려한 건물들이 계속 부식되면서 보수 작업도 끊임없이 이뤄진다. 홍수로 인한 지반 침하를 보강하려면 운하의 물을 빼낸 후 바닥의 진흙을 제거해야 한다.
‘아쿠아 알타’로 이곳 산마르코 광장 등 베네치아의 저지대는 자주 침수된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저 장화를 신고 다니며 베네치아에 사는 특권에 따르는 사소한 불편쯤으로 여긴다.
베네치아,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
주거용과 숙박용 베네치아의 여섯 ‘세스티에리(구역)’ 중 카나레조에 가장 많은 주민이 살고 산마르코에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린다. 1999년 주거용 건물을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쉽게 용도를 변경할 수 있는 법이 시행되면서 주민들을 위한 주택 공급량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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