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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과거에 가축을 쳤던 곳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예루살렘 근처에서 한 목동이 염소떼를 향해 피리를 불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다윗상. 한 젊은 전사가 이스라엘의 숙적인 블레셋(필리스틴) 종족의 거인 골리앗과의 전투에 앞서 영웅다운 자태를 취하고 있다. 다윗이 막강한 왕이었는가 아니면 단순히 지역 부족장이었는가를 놓고 학자들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관광객들이 예루살렘 북쪽의 고대 도시 메기도(므깃도)를 둘러보고 있다. 말 모양의 금속 조각물로 장식해놓은 이 유적에서는 왕궁과 마구간 터가 발견되었다. 처음에 마구간은 솔로몬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현재 드러난 증거로 볼 때 성서에 나와 있는 솔로몬의 사망 시점보다 적어도 100년 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993년에 ‘다윗의 집’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BC 9세기의 석비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다윗이 실존 인물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었다. 지금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서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무찔렀다는 엘라 골짜기의 요새 도시 키르베트 케이야파에서 2008년 여러 개의 방이 딸린 성문과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연대는 다윗 통치기인 BC 10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를 묘사한 그림. 두 여자가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자 솔로몬은 칼로 아기를 둘로 나누라고 명령한다. 아기의 생명을 구하려고 아기를 포기한 여자가 진짜 엄마다.
다윗성은 예루살렘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지역이자 성전산 남쪽에 위치한 발굴 현장이기도 하다. 예부터 이곳은 다윗의 왕궁터로 알려져 있어 주요 관광지가 되었지만, 사실 다윗이 이곳에 왕궁을 지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고고학과 학생들이 사해 남쪽에 있는 고대의 구리 제련 중심지인 키르바트 엔 나하스를 탐사하고 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이 유적의 연대는 BC 10세기로 밝혀져 솔로몬 왕이 관할했다는 그 유명한 광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베타 이스라엘’이라고도 알려진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이라고 믿는다. 이들 대부분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에티오피아에서 기근과 정치적 내란이 발생하자 이스라엘 당국이 공수 작전을 펼쳐 이스라엘로 이주시킨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은 결혼기념 사진을 찍을 때나 바르 미츠바(유대인의 성인식)를 축하할 때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을 즐겨 찾는다. 이 벽은 BC 1세기 말 솔로몬 왕의 성전 유적으로 알려진 자리에 헤롯 왕이 지은 방대한 성전 단지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다.
만수어 유세프 알-쉬요키가 성전산 근처의 실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입으로 불을 내뿜는 묘기를 연습하고 있다. 이 위험한 묘기는 스스로 고안해낸 취미라고 한다. 이곳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발굴 작업이 더욱 진척되면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지만 별 동요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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