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축복과 분쟁의 땅~이스라엘 예루살렘~
상세 내용
작성일 : 16-01-25 10:06 조회수 : 494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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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요르단의 아랍계 기독교도들이 주현절 주간에 요르단 강 제방 근처에 있는 십자가 밑에서 기도를 드리기 위해 강둑을 오르고 있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베두인 족 관광 안내인들이 요르단에 있는 어느 사막에서 차를 마시고 물담배를 피우며 옛 이야기를 정겹게 나누고 있다. 휴대전화 화면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전설적인 동맹을 맺었던 아우다 아부 타이의 사진이 보인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극보수 정통파 유대인인 하레디들이 모여 사는 예루살렘의 메아셰아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정색 정장을 입고 구레나룻을 기른다. 1874년 이곳에 정착촌이 세워진 이후로 거의 변한 게 없는 이 지역에서는 식사부터 예배까지 여러 공공 활동에서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는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살로펙이 웨스트뱅크에 있는 베들레헴을 향해 걸어가던 중에 한 목부가 설치해놓은 성긴 울타리를 돌아가고 있다. 이 울타리는 살로펙이 에티오피아에서 출발한 이후 약 3700km를 걷는 동안 검문소와 국경 관문들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마주친 인공 장벽들 가운데 하나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요르단 남부의 바위투성이 협곡 와디하피르에는 2500여 년에 걸쳐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수천 개의 암각화와 명문들 가운데 낙타를 새긴 멋진 그림들이 있다. 낙타 위에 기수가 타고 있는 그림(왼쪽)도 그 가운데 하나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이스라엘 점령지와 팔레스타인 점령지로 나뉘어 있는 웨스트뱅크의 고고학 유적지 사마리아세바스테에서 젊은이들이 로마시대 유적을 살펴보고 있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세워진 이 로마 시대의 도시에는 광장 하나와 아우구스투스 신전 하나가 남아 있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요르단에서 다른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토마토를 따고 있는 동안 시리아 난민 한 명이 어린 아이에게 헹가래를 치고 있다. 요르단에는 현재 유혈 내전을 피해 넘어온 시리아인 50여 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에티오피아정교회 신자들이 부활절 주간에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성수를 맞으며 기뻐하고 있다. 1948년 이후로 10만 명이 넘는 에티오피아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예수의 모습을 흉내 내서 ‘예수 사나이’로 알려진 미국인 칼 제임스 조지프가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오직 담요 한 장과 성서로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기독교 순례자들은 4세기 이후로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인도에서 온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 있는 다윗 왕의 무덤에서 유대인들과 나란히 서서 기도하고 있다.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이 두 종교의 신자들이 함께 예배하는 몇 안 되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유대교 회당, 이슬람 사원, 십자군이 사용하던 교회가 전부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적이 있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동유럽에서 온 기독교 정교회 순례자들이 양초에 ‘성화’를 밝히며 몹시 기뻐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성화가 부활절 전날 예루살렘 성묘교회에 있는 예수의 묘지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믿는다. |
사진 : 존 스탠마이어 |
살로펙은 레바논과 국경이 맞닿은 이스라엘 북부의 로슈하니크라 동굴군 근처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이 지중해 연안에서 그는 최초의 인류가 이동했던 것처럼 북쪽으로 간 다음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라시아로 갈 예정이다. |
분쟁 지역 |
이번 여정에서 살로펙은 ‘바다가 보이는 아라비아의 풍광’을 떠나 요르단 강 계곡의 오래된 길을 따라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까지 걸어갔다. 이 경로는 오래전부터 정복과 개종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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