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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근원이 뉴욕의 사우스브롱스이든지 서부 아프리카의 마을이든지 힙합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원하는 세대를 대변하는 음악이다.
내게 악몽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딸이 어떤 녀석을 집에 데리고 와서 “아빠, 우리 결혼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녀석이 랩퍼란다. 입 안 가득한 누런 금니에 머리엔 두건을 두르고 근육이 울룩불룩 불거진 팔뚝과 건들거리는 품. 잠시 후 나는 점점 더 깊이 악몽의 나락 속으로 빠진다. 어느새 손자들이 거실에서 우당탕 뛰어다니고 그들이 듣는 음악으로 내 위선은 폭로된다. 젊었을 땐 나 역시 나만의 음악, 나만의 소리에 심취했던 얼간이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젊었을 적 내 모습을 빼다 박은 녀석의 얼굴을 처음 본 날을 저주하고 녀석의 이름을 처음 들은 날을 한탄한다. 멜로디도, 논리도, 악기도, 운(韻)도, 하모니도 없고, 처음도, 끝도, 중간도 없는,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끔찍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로 랩 말이다. 나의 시대는 가버렸다. 이젠 녀석의 세상이다. 그리고 난 거기 살고 있다. 말하자면 힙합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브롱스
랩퍼 지망생 두 사람이 집 근처에서 주먹을 맞대고 있다. 이곳은
저소득층을 위해 뉴욕 시가 공공주택 사업으로 조성한 브롱스리버 주택단지로
춤과 음악, 그래피티의 어울림으로 세계를 정복한 힙합이 1970년대 여기서 태동했다.
도시 스타일
뉴욕 힙합퍼들은 스타일을 과시하기 위해 블링이라 부르는 번쩍이는 장신구를 걸친다
번쩍거리는 현금
번쩍거리는 ‘격자무늬’가 비싼 장신구로 치장한 뉴욕 시 사우스브롱스 주민의 입에서 빛난다.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기도 하는 장식용 치아 커버링은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얻게 된 일종의 힙합패션 귀금속장신구이다.
즉흥적인 랩
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랩퍼 모 슬링아가 무더운 밤 뉴욕 시에서 즉흥적으로 프리스타일 랩을 토해낸다. 그는 아프리카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그리오와 음악에 맞춰 장광설을 내뱉는 자메이카 MC의 전통을 이어받아 삶의 희로애락을 즉석에서 랩으로 엮어낸다. |
리듬의 근원
세네갈 카자망스의 한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전통 타악기를 연주하며 잔치의 흥을 돋운다. 강렬한 서아프리카의 리듬은
노예 생활의 고초 속에서도 고동을 멈추지 않고 아프리카인들이 끌려간
타향 땅에서 재즈, 살사, 록, 힙합 등 다양한 대중음악 장르를 탄생시켰다.
문화적 공동작품
힙합이 돌고 돌아 다카르 외곽 해변에 이르렀다. 경조사때 코라를 연주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생계를 이어가는 그리오인 쟐리가 미국식 랩에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가미하는 랩퍼 오마르 응갈라 섹과 함께 즉흥연주를 한다.
성령을 느끼듯
찰스 ‘C. J.’ 홀 주니어가 우렁차게 선창하고 오버커밍 딜리버런스 처치 성가대가 화답하자 노래 소리가 천국까지 울려퍼질 듯하다. 흑인영가건 세속적인 랩이건 선창과 응창은 수세기 동안 미국 흑인음악의 주조를 이루었다.
새 도시, 새 집단
파코 아리아스(가운데 빨간 셔츠)는 시카고의 험한 동네에서 데이턴 교외로 이사하면서 갱과 폭력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파코(14)는 힙합이 탄생된 배경과 동떨어진 환경에서 힙합을 좋아하는 또래와 금세 어울렸다.
장벽 너머
팔레스타인 랩그룹 댐 DAM(히브리어로 ‘피’ 아랍어로 ‘영원’을 의미한다) 멤버들이 이스라엘이 건설 중인 보안장벽 근처에 서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객 모두를 상대로 공연한다. 이 그룹의 음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 제목은 ‘테러리스트’이다.
조폭인가?
‘총 구경’을 위협적으로 쥔 채 L.T. 허튼(왼쪽)은 깡패 같은 포즈를 취한다. 현실에서 그는 스눕 독 같은 메가톤급 힙합스타를 배출한 능력 있는 레코드프로듀서이다. 많은 랩뮤직에 나오는 폭력과 물질주의는 현실의 반영인가 아니면 현실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인가?
제 2의 프랑스혁명
파리의 노동계층이 사는 지역에서 랩퍼들은 소수민족 출신 젊은이들의 분노와 욕망을 대변한다. 프랑스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것, 실업이 최근 대규모 폭동 원인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힙합은 수십 년 전 힙합이 미국의 빈민가에서 태동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했다.
글로벌 파티
서울의 한 힙합 클럽을 찾은 손님들이 밤새도록 춤추고 있다. 힙합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화와 계층의 젊은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지만, 후기산업사회의 거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도시 젊은이들에게 저돌적인 랩이 들어간 힙합 음악은 특히 매력적이다. |
큰 동작
바르셀로나의 한 클럽에서 파티마 밀란 카베자스가 힙합 비트에 맞춰 춤추자 일제히 시선이 쏠린다.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신대륙의 작품 힙합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휩쓸며 젊은이들의 자기표현과 저항의 수단이 되었다.
사진 : 데이비드 앨런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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