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콩고의 심장 킨샤샤~예술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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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21 10:03 조회수 : 361 추천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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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킨샤사에서 두 소년이 배를 잔뜩 집어넣고 고개를 돌린 채 새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성년식을 준비하고 있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킨샤사의 혼잡한 은가바 교차로는 기업가적 열정이 넘치는 곳이다. 이 도시의 주민 대다수는 공식적으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아 살아남으려면 분주히 움직이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한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행위예술가 줄리 지키가 양쪽 가슴에 오일 필터를 매달고 모터 오일과 자동차 바퀴를 태워 만든 재를 온몸에 바른 채 ‘인간 자동차’로 분장해 환경 오염에 항의하고 있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예술가 줄리 지키가 자동차 바퀴를 태워 만든 재를 엔진오일에 개어 온몸에 바르고 양쪽 가슴에 오일 필터를 매달아 ‘인간 자동차’로 분장한 채 환경 오염에 항의하고 있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저명한 화가 셰리 셰린이 랜턴을 들고 있는 문하생 모코코의 도움으로 야간 작업을 하고 있다. 킨샤사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날이 어두워지면 자주 전기가 나간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마통게에서 고급 맞춤복을 뽐내며 걷고 있는 이들처럼 킨샤사의 젊은 패셔니스타들에게는 도시 전체가 패션쇼 무대다. 자신을 열렬히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일부 젊은이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고가의 의상을 구입하는 데 쓴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전쟁에 짓밟힌 고향을 탈출해온 부락민들은 부족의 전통 의식을 대도시 킨샤사의 분위기에 맞게 바꿨다. 난쟁이들이 포함된 크푸 암비티리 무용단은 부족 의식에서 공연을 하거나 축제에서 돈을 받고 공연을 한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가비라 불리는 거리의 아이가 악령을 몰아내는 축사의식을 치르기 위해 활석분을 덮어쓴 채 애써 공포심을 억누르고 있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1990년대에 오순절파 교회들이 들어온 후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을 주술사라 여기고 집에서 내쫓았다. 이는 절박한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미신적 행위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프레디 침바는 숟가락과 총알을 녹여 정치적 의미가 담긴 조각상을 만든다. 사진에 있는 조각상은 빈 물병들로 채워진 옷가방을 갖고 있는 임신부를 표현했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킨샤사 킴방귀스테 교향악단의 관리자인 알버트 마투반자 은란두가 악기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브루스 마캉가는 자신의 허름한 집에서 처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킨샤사의 킴방귀스테 교향악단에서 연주해온 지 4년이 됐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레바논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인 ‘팽 빅투아르(승리의 빵)’에 ‘캉가 주르네’라는 바게트 빵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식민지 시절에 벨기에 사람들이 처음 선보인 빵은 가격이 저렴해서 이제는 킨샤사 주민들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식품이 됐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킨샤사의 일부 음악가들에게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못 쓰거나 다른 신체장애를 가진 연주자들로 구성된 유명 밴드 ‘핸디 포크’가 한 술집에서 예행 연습을 하고 있다. |
예술의 도시, 킨샤사 |
사진 : 파스칼 메트르 |
은둔형 예술가인 보디스 아이직 킹젤레즈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복합주택에 주차해놓은 자동차 안에 작품을 보관하는데, 그가 만든 미래의 모형 도시들은 수만 달러를 호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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